[5주 2일]
임신 확인 전, 자연 임신은 꿈에도 생각도 못하고
몇 달 동안 쉬었던 필라테스를
새로 오픈한 센터에서 저렴하게 등록했었다.
1회 수업해 보니 코어 근육 강화를 집중적으로 훈련하는 클래식 스타일의 필라테스라는데,
수업 당시는 만족스러웠지만,
임신 초기에 배에 강한 힘을 주어도 될까 걱정이 됐다.
(하지만, 임신을 몰랐던 3주 차에 이미 해버리긴 했다.
하지만 그때는 시험관 시작 전이라며 맥주도 한 캔 했는걸.. 다들 몰랐을 땐 무효라고 하더라 :)
운동을 쉬고 싶진 않지만 그룹 필라테스는
무리가 될 수 도 있을 것 같아 아깝지만
위약금을 물고 해지 후,
집 근처 다른 산전 산후 필라테스를 새로 등록했다.
부디 산후 필라테스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5주 5일]
첫 피검사 후 열흘 뒤
강남차병원을 다시 찾았다.
첫 초음파를 기다리며, 임신 초기에 시작된다는
입덧이나 임신 증상이 뚜렷하지가 않아서
임신이 제대로 된 걸까.
되긴 됐는데 자궁 외 임신이 된 건 아닐까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까
문득문득 걱정이 솓았었는데
다행히 자궁 내에 아기집이 자리 잡았다.
반지 링과 반지 알 같은 난황과 아기
2mm라는 설명과 함께
몇 장의 사진을 뽑아주셨다.
그제야 알았다.
강남차병원 난임센터에는
213호/215호 2개의 초음파실이 있다.
그중 박한뫼 교수님이 계시는 213호 초음파실은
항상 시험관 시작하는 날과 채취 후 진료 보는 날에만 갔었다. 그래서 시작과 끝을 교수님이 자세하게 봐주시는구나.라고만 생각했는데,
오늘 와보니 이곳은 이식 후 임신 확인하는 사람들이 배정되는 곳이기도 했다.
앞에 들어갔던 사람들이 속속들이 작은 사진을 손에 살포시 쥐고 나온다.
말로만 들어봤던 몰래 움켜쥐고 나오는 사진.
나도 처음으로 손에 쥐어보았다.
혹시 내 뒷사람이 아직 아기를 기다리는 중일 수도 있기에 사물함에 조심히 바로 넣어 놓고,
인적이 드문 대기실에서 책 사이로 살짝살짝 펴본 사진
초음파 후 다시 한참을 기다려
드디어 이우식 선생님을 만났다.
평소 같으면, 난포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
내 기록과 초음파 사진을 보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얼굴을 안 보고 말씀하시는 이우식 선생님인데,
오늘은 선생님 앞에 마주 앉자마자
선생님께서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씀하신다.
“나보다 더 능력자들이네. 허허”
처음에는 못 알아듣고 갸우뚱했다가
잠시 뒤 그 의미를 알아채고 배시시 웃었다.
비록 자연임신이지만
지금 이 순간이 오기까지
여러모로 선생님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말이 유창하게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선생님 덕분이에요..”
내가 겨우 꺼낼 수 있는 한 마디였다.
그리고 잊어버리지 말아야지 했던
임신 확인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지금 난임휴직 중이다.
올해 말에 이식을 해서 임신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올해가 지나고 내년에 복직하는 것을
계획했는데, 갑작스럽게 임신이 되고
당장 이 휴직을 종료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임신 초기 6~12주 사이
유산을 겪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았다.
그래서 지금의 임신이 마냥 마음에 놓이는 것은 아니었다. 휴직을 전환하기 위해 임신사실을 알렸다가..
혹시라도 잘못되면 다시 되돌리는 행정적 절차를 굳이 밟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임신이 안정적으로 확인이 되고 나서 확인서를 발급받고 싶었다.
“선생님 저.. 임신확인서는 다음에 받아도 될까요?
직장에 보고를 해야 하는 데 휴직이 바로 종료될 수도 있어서요..”
아기집만 확인하면
어찌할 요량 없이 임신확인서가 덜컥 이미 나와있다는
병원 후기도 보았기에,
최소한 심장소리는 듣고 받고 싶었다.
조심스럽게 꺼낸 나의 질문에
선생님을 처음 마주한 그날처럼,
그 뭐 어려운 일이겠냐는 표정으로 인자하게 답해주셨다
난소기능저하 진단을 받았지만
정작 난임진단서를 발급받지 못해 전전긍긍했던 지난날 우리 부부의 불안을 아무렇지 않은 일로 만들어주셨던 그때처럼.
그리고 다음 초음파에서 이상이 없으면
병원을 이제 옮겨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난임병원의 경우 10주 즈음에나 졸업을 한다고 들어서 예상치 못했던 전원 이야기였다.
“그러면 다음번이 마지막인가요..?”
난임센터를 오래 다니는 것이 무슨 즐거운 일이겠냐만은
항상 진심으로 친절하게 대해 주시는
간호사와 직원 분들.
그리고 과묵한 듯 하지만 웃으시는 눈에 다정함이 넘치는 이우식 선생님을 만나는 짧지만 소중한 진료시간이
무료했던 나에겐 설레는 일과 중 하나였는데,
진료 후 항상 남편과 선생님과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털어놓으며 웃는 게 우리의 기쁨 중 하나였는데,
이제 선생님을 못 뵐 수도 있다니.
부디 끝나길 바라야 하는 인연이지만
끝이고 싶지 않은 인연.
기쁨과 아쉬움이 뒤섞인 채,
진료 후 늘 한 움큼 받아오던 주사가 없어 가벼운 두 손을 어색하게 늘어뜨리고 병원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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