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대로라면 과배란을 시작하기로 한 날,
임신 4주 차 자연임신을 피검사로 확인했다.
[극난저 자연임신] 4주 차. 난임병원에 다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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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난저 자연임신] 4주차. 난임병원에 다시 가다.
물혹과 휴가로 잠시 쉬었던 시험관(과배란-채취) 재개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확인한 자연임신. 이식을 한 번도 못해보고 8개월 동안 채취로 배아만 모으다 맞이한, 너. 비슷한 시기에 시험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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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뒤, 첫 초음파에서 아기집을 보았고,
다시 2주 뒤 심장소리를 듣기 위한 두 번째 초음파 예약이 잡혔다.
지난 진료에서 이우식 선생님께서,
초음파에 별 이상이 없다면 이후 전원을 하라고 하셨다.
글로만 보았던 난임병원 졸업.
올해 안에는 이식을 시도할 수 있게 되어,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만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자연임신으로 그간 함께했던 이우식 선생님과의 이별이 갑작스레 다가옴에 기분이 얼떨떨했다.
아기집이 확인돼도 심장소리는 또 하나의 관문이라
여겼기에, 만약의 경우에 대한 마음의 준비도 했다.
동시에 정말 감사하게 건강함을 확인했을 때,
선생님과의 이별을 위한 준비도 해갔다.
사실 자연임신이므로 난임병원과 무슨 상관이겠냐 생각할 수 도 있지만,
나는 진심으로 이우식 선생님 덕을 많이 보있다고 생각했다.
지난 10개월, 처음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병원에 다니는 게 나의 주요 일과였다.
돌봐야 할 아이가 있어서가 아니라
나를 돌봐야 했다.
병원을 다니는 기간에는 건강에 집중하고,
다음 시기를 기다리며 쉬는 기간에는 시험관에 얽매여 스트레스받지 않고 내게 주어진 여유를 즐기기 위해 노력했다.
나와 비슷하게 10년 넘게 일을 하다가
시험관을 하며 일을 쉬고 있는 동료 중엔 이 시기를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었다. 반복되는 실패와 명확한 정답의 길이 보이지 않는 난임 문제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좌절감을 얻기도 쉬웠다.
나도 좌절과 슬픔을 겪는 순간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 시간을 빨리 털어버리고
내가 노력할 수 있는 것과 지금 누릴 수 있는 것을 충분히 즐기려고 하였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 하나는 이우식 선생님과 함께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우식 선생님은 첫 만남부터 선생님이 지니신 연륜과 여유, 그리고 마스크 뒤로 숨겨진 다정한 할아버지와 같은 모습으로 나, 그리고 우리 부부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셨다.
(이전 이야기 참고)
[AMH 0.22] 시험관 이야기2::고프로락틴혈증 (feat. 자궁내막증, 야즈)
https://flavor17.tistory.com/m/8
얼핏 보면 선생님이 무뚝뚝하다고 느끼는 환자들도 있다고 한다. 나의 첫 진료에서도 우리 부부가 인사를 드렸는데, 대답을 안 하시고 눈도 안 마주치시고 모니터만 뚫어지게 쳐다보셔서 처음엔 당황하기도 했다.ㅎㅎ
허나 오래지 않아 깨달았다. 선생님이 대답이 없으신 건 쏟아지는 환자들 속에 시간을 쪼개서 모니터를 보며 처방을 어떻게 내릴지 골똘히 고민하는 중이라 그러하신 거였다. 그래서 그 이후엔 선생님이 대답이 없으셔도 개의치 않고 진료실에 들어가면 늘 밝은 톤으로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눈빛으로 전해지는 선생님의 따뜻함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또한, 선생님 덕분에 마음 편히 휴직을 시작했다.
무뚝뚝하지만 누구보다 다정하신 면모를 지니심을 느낀 후론 진료를 갈 때마다 선생님과의 진료 시간은 짧지만 기대되는 시간이었다. 1시간을 달려 병원을 오고, 다시 1시간 넘게 기다리지만, 좋은 날을 맞이하기 위한 희망의 시간으로 여겼다. 특히 농담이라도 슬쩍 던지시는 날에는 남편에게 토씨 하나 빠짐없이 공유하며 서로 아이같이 즐거워했다.
(하루는 갑자기 채취 일정을 잡게 되어, 남편과 스케줄을 급히 상의하느라 선생님 앞에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료가 길어지는 게 기다리는 뒷사람에게 미안해서 용건만 빨리 확인하고 끊었다. 그랬더니 선생님 말씀하시길. “사랑해~라고 말해야지 왜 그냥 끊어” ㅎㅎ)
결과가 좋지 않은 날에도,
선생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이 결과가 내 현재 상태에서 가능한 최선의 결과였음을, 다음번엔 선생님께서 내게 더 적절한 처방을 찾아주실 것임을 믿으려 했다. 그리고 그런 영역은 선생님에게 온전히 맡기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내 몸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 1월에 난임병원을 정하지 못하고 이곳저곳 상담했을 때, 사실 송파마리아 여성병원도 함께 예약했다.
카페를 뒤져 찾은 한 선생님은 초진 예약이 6개월 뒤에나 가능하다고 했다. 처음에 나는 6개월이면 이식 시도를 한 번쯤은 해볼 줄 알고, 실패할 경우 전원을 고려해 지난 8월에 초진 예약을 잡아두었다.
허나 그 오랜 기간 4일 배양 배아 하나를 겨우 얻어내었을 뿐인데, 그 병원 초진 예약 날이 다가왔다. 상담만 받고 차병원에서 마저 진행을 할 수도 있었지만, 다른 병원에 가보는 것 자체가 왠지 스스로 선생님을 불신하고 배신하는 느낌이 들었다. 또 이후 진행을 자꾸 의심하고 불안하게 여길 것 같았다.
선생님에 대한 믿음이 나 스스로 흔들리면 결과가 더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1년은 충분히 선생님과 함께하겠다고 마음먹고 해당 초진 상담을 취소했다.
그렇게 우직하게 이우식 선생님을 믿으며 보낸 10개월.
이식 없이 채취와 휴식만 반복했지만 마지막 2달간은 불가피하게 병원 일정을 지속할 수 없었다. 아쉽지만 다음 텀의 채취를 기대하며, 이게 이식 전 우리 부부의 마지막 휴가라 생각하고 열심히 즐기자고 남편과 약속하고 즐겁게 지냈다.
그렇게 내게 소중한 씨앗이 찾아왔다.
그래서 오늘 졸업을 하게 되면,
선생님과 마지막 인사를 하게 되면
이 감사한 마음을 꼭 전하고 싶어서, 전날 편지지에 가득
그간의 이야기와 감사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적었다.
(수많은 환자들 중 나를 기억하시기 어려우실 것 같아 내 이야기를 충분히 담느라 편지가 길어졌다.)
그리고 약소하지만 작은 간식 선물도 샀다.
혹시라도 후에 일이 좋지 않아
생각보다 빨리 다시 난임병원에 돌아오면 민망할 수 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 순간의 감사함을 꼭 전하고 싶었다.
대망의 병원 진료 당일.
초진 후 선생님 진료는 병원 정책 상 늘 혼자 다녔는데,
마지막 진료일 수 있으니,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자
남편이 반차를 쓰고 함께 따라왔다.
강남차병원은 늘 그렇듯 대기가 길고 공간이 협소하여
남편이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라고 한 뒤 진료 순서가 다가올 때 전화를 했다.
그날은 유독 초음파 대기가 적어서 도착 10여분 만에
초음파가 금세 끝났다.
다행히 건강한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10시에 진료 접수를 하니 13명의 대기가 있었다.
그중 초진환자가 있었는지 진료가 30분 가까이 유난히 긴 경우도 있어 평소보다 대기가 오래 걸렸다.
11시쯤에야 병원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남편을 불렀다.
그리고 우리 순서가 가까이 다가오자 선물과 편지를 꼭 쥐고 진료실 앞에 서서 기다렸다.
처음 아기집 초음파를 볼 때도,
첫 심장소리 초음파를 볼 때도 떨리지 않았던 심장이
콩쿠르 대회를 앞둔 듯 떨리기 시작했다.
이제 들어가면 선생님과 안녕이구나.
그렇게 내 차례가 왔다.
늘 그렇듯이 별다른 말씀은 없으셨다.ㅎㅎ
별다른 말씀이 없다는 건 심장소리도 아기도 모두 건강히 잘 있다는 뜻.
어디로 전원 하는지 다시 한번 물으셨다.
집에서 가까운 아산병원이라고 말씀드리니,
정진훈 교수님에게 가보라고 추천해 주셨다.
잘하는 친구라며, 고위험 임신 전문이라고ㅎㅎ
차병원에서 왔다고 얘기하라며 의뢰서를 써주셨다.
그리고 블로그 글 어디선가 봤던 것처럼.
우리를 잊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악수를 한 번 하자고 손을 내미셨다.
눈물이 글썽해지는 걸 꾹 참고
감사했다고, 처음으로 선생님의 손을 잡고 악수를 나눴다.
이우식 선생님 진료실 한쪽에 진열되어 있는 환자들의 선물과 편지에서 알 수 있듯이 수많은 환자에게 받으셨을 편지이지만, 편지를 썼다고 쑥스럽게 내밀었더니, 선생님의 깊은 눈가 주름이 더욱 진해지며 환하게 좋아해 주셨다.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떴다.
보통 진료를 마치면,
바로 다음 환자가 호명되며 들어가는 데,
그날은 웬일인지 내가 밖에서 간호사님의 설명을 다 들을 때까지 다음 환자를 호명하지 않았다.
혹시 내 편지를 바로 읽고 계셔 주신 것일까 하는
기분 좋은 생각이 들었다.
(근데 잠깐 읽기엔 너무 구구절절 긴 편지를 적은 것 같아 선생님께서 다 읽기 너무 힘들지 않으시려나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다.ㅎㅎ)
그렇게 우리 부부의 은인인
이우식 선생님과의 진료를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병원을 나섰다.
건강하게 순산하고,
둘째를 만들러 다시 방문할 그날을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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